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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독서기록 16.>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어느살인자의 이야기"를 읽고

by 머니머니54 202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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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함은 축복이 아니라 고립의 시작일지도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해 기이하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소설이다. 시각 중심의 세계에서 철저히 후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간 존재를 파고드는 이 작품은, 한 인간의 파괴적 여정을 따라가며 아름다움과 광기, 존재와 결핍, 이성과 감각의 경계를 넘나든다.

향기를 지닌 자, 향기 없는 자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18세기 파리의 악취 나는 시장에서 태어난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버려지고, 사람들과의 애착을 전혀 형성하지 못한 채 자란다. 그가 가진 단 하나의 특이한 능력은, 모든 냄새를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천재적인 후각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에게는 어떤 향기도 나지 않는다.
바로 그 ‘무향(無香)’은 그르누이를 괴물로 만들고, 동시에 천재로 만든다.
그는 자기 존재를 느끼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향기를 탐색하며, 급기야 인간의 향기마저 수집하고자 한다.

향수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완벽한 향수를 창조하기 위해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26번째 향기, 로라의 향기를 마지막으로 수집해 모든 이가 사랑하게 되는 ‘절대 향수’를 완성한다.

이 향수를 뿌리는 순간, 군중은 그의 정체를 망각하고, 심지어 신처럼 숭배한다. 그러나 정작 그르누이는 그 향기 속에서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감각을 느끼며, 허무에 빠진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뿌린 채, 파리의 거리에서 무리에게 잡아먹히는 죽음을 택한다.


감각, 결핍, 그리고 인간됨의 조건

이 소설은 감각의 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히 냄새를 묘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후각이라는 비시각적 감각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쥐스킨트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현실 인식 구조를 뒤흔든다.
시각은 명확하고, 논리적이고,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지만, 후각은 침투하고, 본능을 자극하며, 감정을 무장해제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감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인간의 본성과 위선을 해부한다.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어떤 형태의 결핍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그르누이는 향기가 없고, 발디니는 창조성이 없으며, 가이아르 부인은 감정이 없고, 후작은 자기 성찰 능력이 없다.
이들은 단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결핍을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고 세상을 해석하려는 인물들이다.
결핍은 그들을 병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이라는 위험한 힘

가장 섬뜩한 장면은 그르누이가 향수를 완성해 군중 앞에 나섰을 때다.
단 한 방울의 향수로 그의 죄는 용서되고, 군중은 살인자를 신처럼 경배한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향기만으로 모든 것을 뒤집는다.
이 장면은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아름다움은 도덕을 감출 수 있는가?”

쥐스킨트는 냉소적으로, 그러나 냉정하게 말한다.
그렇다. 인간은 감각 앞에서 도덕을 잊는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치명적인 악은, 가장 아름다운 외양을 하고 세상에 등장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르누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향기를 빼앗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만들어낸 자아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는 단 한 번도 진정한 '나'로 살아보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도 그 자아를 버리고 소멸을 선택한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지만, 관계로 완성된다.
홀로 있는 내가 있고, 자식으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연인으로서의 내가 모여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나를 단 하나의 정의로 규정하거나, 누구에게 증명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특별함은 축복이 아니라 고립이다

이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하나였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끝은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만의 특별한 능력”을 꿈꾼다.
하지만 『향수』는 그 상상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보여준다.
특별함은 사람을 고립시키고, 고립은 감정의 결핍을 낳고, 감정 없는 특별함은 괴물이 될 수 있다.

“향기로운 외피 속에 숨겨진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 — 특별함이 곧 비극이 되는 이야기.”

이 책은 인간의 본성, 감각, 고립,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해부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나의 향기는 어디서 오는가?”